영화 제5원소(The Fifth Element, 1997)는 뤽 베송 감독이 연출한 SF 블록버스터로, 독창적인 세계관과 화려한 미장센을 통해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명작입니다. 단순히 미래를 배경으로 한 액션 영화에 그치지 않고, 패션·건축·음악 등 다양한 예술적 요소를 영화적 장치와 결합하여 SF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이번 리뷰에서는 비주얼 아트와 SF 장르의 융합이라는 관점에서 영화가 남긴 미학적 의미를 탐구해 보겠습니다.
고딕과 미래가 공존하는 미장센
제5원소는 초반부터 독특한 미장센으로 관객을 사로잡습니다. 이집트 사막 속 신전에서 출발하는 영화는 고대적 신비를 품은 공간을 제시하고, 곧장 미래 도시의 하늘 위로 이동합니다. 이는 단순한 시간적 전환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고전과 현대의 공존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입니다.
특히 뉴욕을 모티브로 한 23세기 대도시는 영화사에서 손꼽히는 SF적 상상력의 결정체입니다. 하늘을 가득 메운 고층 빌딩과 공중을 나는 택시는 단순히 배경이 아니라, 미래 사회의 질서와 혼돈을 동시에 드러냅니다. 도시의 설계는 프랑스 만화가 장 지로(모비우스)와 장 클로드 메지에르의 디자인에서 비롯되었는데, 이들의 작품은 이후 수많은 SF 영화와 게임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또한 의상은 세계적인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가 맡아 약 1000벌 이상의 독창적 코스튬을 제작했습니다. 류실라 루의 흰색 붕대 의상, 방송 진행자의 기괴한 의상, 도시 시민들의 과장된 복장은 영화가 단순한 이야기 전달을 넘어 패션과 시각 예술의 전시장이 되도록 만듭니다. 이렇듯 제5원소의 미장센은 단순히 화려함이 아니라, 영화가 전달하는 메시지—혼돈 속에서도 사랑과 예술은 존재한다—를 직접적으로 구현합니다.
개성적인 캐릭터와 상징성
제5원소가 단순한 비주얼 쇼크를 넘어 고전으로 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캐릭터와 상징성에 있습니다. 주인공 코벤 달라스(브루스 윌리스)는 전형적인 액션 히어로처럼 보이지만, 군인 출신 택시 기사라는 설정을 통해 평범함과 비범함을 동시에 지닙니다. 그는 세계를 구하는 운명을 지니면서도, 결국 사랑이라는 인간적 감정에 의해 움직이는 인물입니다.
리루(밀라 요보비치)는 ‘제5원소’라는 상징적 존재로, 네 가지 원소(불·물·바람·흙)를 넘어서는 궁극적 힘인 사랑을 체현합니다. 그녀의 등장은 단순히 판타지적 장치가 아니라, 인류가 직면한 혼돈 속에서 가장 본질적인 해답은 기술이나 무기가 아닌 인간의 감정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또한 장 폴 고티에가 디자인한 리루의 붕대 의상은 캐릭터의 상징성을 극대화했습니다. 그녀는 육체적으로는 파괴적 힘을 지니지만, 동시에 연약한 인간성을 지닌 존재입니다. 붕대 같은 의상은 보호와 노출, 신성과 인간성의 이중성을 시각화하며, 캐릭터의 본질을 강렬하게 드러냅니다.
이외에도 장 르노의 유머러스한 연기, 게리 올드먼이 연기한 악역 장르의 전형을 뒤집는 자르그는 영화 전체에 풍부한 텍스처를 더합니다. 각 캐릭터는 단순한 플롯의 기능을 넘어, 영화의 미학적 메시지를 구성하는 중요한 퍼즐 조각으로 작동합니다.
SF와 비주얼 아트의 융합
제5원소의 가장 큰 성취는 영화가 하나의 종합 예술로 작동했다는 점입니다. 이 작품은 단순히 과학적 상상력을 스펙터클로 표현한 것이 아니라, 음악·패션·건축·문학적 모티프까지 융합하여 완성되었습니다.
음악 면에서는 에릭 세라의 전자음악과 오케스트라가 결합된 사운드트랙이 돋보입니다. 특히 외계 오페라 가수 플라바 라구나의 아리아 장면은 클래식과 전자음악, 미래적 영상미가 어우러져 지금도 영화사에서 손꼽히는 명장면으로 꼽힙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시청각적 퍼포먼스가 아니라, 영화의 주제인 ‘다양성 속의 조화’를 예술적으로 표현한 순간입니다.
또한 영화는 전형적인 SF 블록버스터 구조를 따르면서도, 유럽 예술 영화 특유의 미학적 실험을 결합했습니다. 이 때문에 제5원소는 할리우드 대중성과 유럽 예술성이 공존하는 드문 사례로 평가됩니다. 할리우드의 액션적 긴장과 프랑스 영화의 시각적 실험이 만난 결과물은, 지금도 수많은 창작자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영화는 ‘SF = 과학기술’이라는 공식을 넘어, SF = 예술적 상상력의 총합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미래 예측이나 기술적 환상이 아닌, 인간과 예술에 대한 본질적 탐구로 이어지며, SF가 철학적·미학적 깊이를 가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결론
영화 제5원소는 단순한 SF 블록버스터가 아니라, 비주얼 아트와 SF의 융합을 통해 예술적 완성도를 이룬 작품입니다. 고대와 미래가 공존하는 미장센, 개성 넘치는 캐릭터, 패션과 음악, 건축과 영화적 상상력이 모두 어우러져 지금까지도 신선한 울림을 줍니다.
리루가 상징하는 ‘사랑’이라는 제5원소는 영화의 화려한 비주얼을 넘어, 혼돈 속에서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본질적 가치가 무엇인지 관객에게 묻습니다. 그렇기에 제5원소는 단순한 오락물이 아니라, 예술적 성찰을 담은 SF의 교본으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