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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맨 사회적 리뷰 (권력, 충성, 인간의 고독)

by alot-info 2025. 8. 3.

영화 아이리시맨 포스터
영화 아이리시맨 포스터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영화 아이리시맨(The Irishman, 2019)은 단순한 범죄 영화가 아닙니다. 이 작품은 무려 3시간 30분에 이르는 장대한 러닝타임을 통해 한 인간의 일생과 미국 현대사의 어두운 뒷면을 교차시킵니다. 영화는 프랭크 시런(로버트 드니로)의 시선을 따라가며, 마피아 조직과 정치 권력의 얽힘, 그 속에서의 충성과 배신, 그리고 결국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인간의 고독을 집요하게 드러냅니다. 알 파치노와 조 페시가 합류한 이 작품은 단순한 갱스터 영화가 아니라, 노년과 죽음을 앞둔 인간의 성찰을 담아낸 회고록에 가깝습니다. 이번 리뷰에서는 권력, 충성, 인간의 고독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아이리시맨이 남긴 사회적 메시지를 살펴보겠습니다.

권력: 보이지 않는 손이 지배하는 세계

아이리시맨은 권력의 실체를 정면으로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주인공 프랭크 시런은 트럭 운전사로 생계를 이어가던 평범한 노동자였지만, 작은 계기를 통해 마피아 세계와 맞닿게 됩니다. 그는 조직의 청부살인을 수행하며 점차 권력의 중심에 다가가고, 동시에 정치권과 노동조합 내부의 갈등에도 휘말립니다.

영화는 노동조합 지도자 지미 호파(알 파치노)를 둘러싼 정치적 갈등을 중심으로, 미국 현대사 속 권력의 흐름을 보여줍니다. 단순한 범죄 집단의 이야기가 아니라, 노동운동, 정치, 범죄조직이 서로 얽혀 하나의 권력 구조를 형성한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이는 실제 미국 역사 속에서도 논쟁이 되어온 부분으로, 영화는 이를 사실적인 디테일로 묘사해 설득력을 더합니다.

권력은 영화 속에서 늘 보이지 않는 손처럼 작동합니다. 표면적으로는 정치인과 노조 지도자들이 권력을 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배후의 조직과 폭력이 그들의 결정을 움직입니다. 프랭크는 그 손의 명령을 수행하는 도구였을 뿐입니다. 결국 영화는 관객에게 묻습니다. “권력은 누가 가지는가? 그리고 그 권력은 누구를 위해 쓰이는가?” 아이리시맨은 이 질문을 통해 권력이란 개인의 자유와 인간성까지 집어삼키는 괴물임을 보여줍니다.

충성: 대가 없는 선택은 없다

아이리시맨의 또 다른 핵심 주제는 충성입니다. 프랭크는 마피아 두목 러셀 버팔리노(조 페시)와 지미 호파 사이에서 충성을 다하며 살아갑니다. 그는 이들에게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 자신의 손을 더럽히고, 가족과의 관계마저 희생합니다.

하지만 영화가 보여주는 충성은 결코 순수하거나 영광스러운 가치가 아닙니다. 충성은 언제나 이용과 배신의 도구로 작동합니다. 프랭크는 호파를 위해 평생을 바쳤지만, 권력의 흐름이 바뀌자 결국 호파의 죽음을 지시받은 사람도 바로 그였습니다. 충성은 프랭크에게 인정과 권력을 가져다주었지만, 동시에 가장 큰 죄책감과 고독을 안겨주었습니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충성의 양면성을 드러냅니다. 한편으로 충성은 인간관계를 지탱하는 신뢰의 기반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권력자에게 복종하기 위한 자기합리화일 뿐일 수도 있습니다. 결국 프랭크가 얻은 것은 조직의 일시적인 신뢰였을 뿐, 시간이 흐르자 그는 버려지고 홀로 남습니다.

영화는 관객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이 충성하는 대상은 무엇인가? 그 충성이 끝내 당신을 지켜줄 수 있는가?” 아이리시맨은 충성이란 언제나 대가를 요구하며, 그 대가가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냉혹한 현실을 보여줍니다.

인간의 고독: 마지막에 남는 것은 아무도 없다

아이리시맨의 결말은 화려한 총격전이나 영웅적인 죽음이 아닙니다. 프랭크는 늙고 병든 몸으로 요양원에 남아, 자신이 걸어온 길을 회상합니다. 그는 수많은 사람을 죽였지만, 정작 자신의 삶을 함께해 준 가족과 친구들은 모두 그를 떠났습니다. 그의 딸조차도 아버지의 피 묻은 충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를 외면합니다.

이 마지막 장면은 영화 전체의 메시지를 압축합니다. 권력과 충성을 위해 살아온 인생이 결국 남긴 것은 깊은 고독과 공허함뿐이라는 사실입니다. 스코세이지 감독은 범죄 영화의 전형적인 영웅담을 철저히 거부하고, 대신 죽음을 앞둔 인간의 허무를 정면으로 보여줍니다.

프랭크가 요양원에서 사제에게 고백하는 장면, 그리고 크리스마스 시즌에 외로이 방에 홀로 남는 장면은 특히 인상적입니다. 그는 여전히 문을 반쯤 열어둔 채 잠을 청하는데, 이는 과거에 자신이 언제나 폭력과 배신에 대비해야 했던 습관의 잔재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 문을 열고 들어올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 문틈은 곧 인간 존재의 고독을 상징하는 강렬한 이미지입니다.

아이리시맨은 결국 화려한 범죄 영화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사실은 인간의 삶이란 무엇이며, 죽음을 앞두고 우리는 무엇을 남기는가라는 실존적 질문을 던집니다.

결론

영화 아이리시맨은 권력, 충성, 인간의 고독을 통해 범죄 영화의 한계를 넘어선 작품입니다. 프랭크 시런의 삶은 권력에 이용당하고, 충성에 배신당하며, 결국 고독 속에서 마무리됩니다. 스코세이지 감독은 갱스터 영화의 화려한 신화를 해체하고, 남은 것은 결국 인간의 허무와 외로움뿐임을 보여줍니다.

영화를 본 뒤 우리는 질문하게 됩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충성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그 끝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아이리시맨은 긴 러닝타임 동안 관객을 불편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인간의 삶을 깊이 성찰하게 만드는 수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