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는 단순한 SF 영화 그 이상이다. 극한의 기후 변화 속에서 살아남은 인류가 하나의 기차 안에서 계급을 이루고 살아가는 이 설정은 놀라울 만큼 치밀하고 상징적이다. 이번 글에서는 설국열차 속 세계관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인 기차 구조, 시간 설정, 그리고 캐릭터 분포에 대해 깊이 있는 분석을 통해 영화 속 복잡한 세계를 낱낱이 파헤쳐본다.
기차 구조: 압축된 사회 계급의 축소판
*설국열차*의 기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닌, 하나의 사회 구조를 상징한다. 기차는 총 1,000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뒷칸부터 앞칸까지 철저하게 계급에 따라 분리되어 있다. 맨 뒷칸은 ‘꼬리칸’으로 불리며, 가장 낮은 계급의 사람들이 밀집해 있으며, 이들은 극도의 억압과 통제를 받는다. 꼬리칸은 어두운 조명, 좁은 공간, 곤충 단백질로 만든 단백질 블록 등으로 묘사되어, 생존을 겨우 유지하는 삶의 조건을 보여준다.
중간 칸으로 가면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실, 수족관, 수영장, 사우나, 나이트클럽, 미용실 등이 존재하며, 이는 상류 계급이 누리는 문화와 여유를 상징한다. 마지막 엔진 칸은 기차를 유지하는 기술과 권력의 중심으로, 윌포드라는 절대 권력이 존재하는 곳이다. 이 구조는 계급 사회의 고착화와 위계 질서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강력한 은유다.
기차 내의 공간 배치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각 칸이 특정 기능과 사회 계층을 대표하고 있어, 주인공 커티스가 꼬리칸에서 시작해 엔진 칸까지 전진하는 여정 자체가 하나의 ‘계급 상승 서사’로 읽히게 만든다. 계단 없이 일직선으로 이어진 이 기차는 상승이나 탈출이 불가능한 구조로 되어 있어, 희망 없는 시스템 속 인간의 처지를 보여준다.
시간 설정: 재난 이후 인류 생존의 시계
설국열차의 시간 배경은 현재로부터 가까운 미래다.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인류는 ‘CW-7’이라는 냉각제를 대기 중에 살포하지만, 이로 인해 지구는 순식간에 빙하기로 돌변한다. 생존자는 윌포드가 만든 열차 안에서만 살 수 있게 되며, 이 기차는 종말 이후 인류의 유일한 생존처이자, 시간을 측정하고 삶을 유지하는 유일한 체계가 된다.
기차는 1년에 한 바퀴 지구를 순환하며 이동하고, 이는 영화 속 시간 개념의 기준이 된다. 기차가 특정 지점을 통과할 때마다 "1년이 지났다"는 대사가 나오고, 이는 기차 내 시간의 흐름을 상징하는 중요한 장치가 된다. 사람들은 외부 세계와 단절된 채, 오직 기차 내에서의 계절, 날씨, 해가 뜨고 지는 리듬 없이 시간을 인지한다. 이로 인해 시간은 물리적 개념보다는 시스템 유지와 권력 정당성을 위한 도구로 변질된다.
또한 아이들의 교육 시간, 식사 시간, 일정한 리듬으로 공급되는 단백질 블록 등 모든 것이 ‘기차 시간표’에 따라 움직인다. 이러한 통제된 시간은 통치 수단이자 세뇌 방식으로 기능하며, 자유의 개념을 잊게 만든다. 주인공들이 엔진 칸으로 향하면서 현실의 시간 개념을 되찾아가는 과정은, 자유의지를 회복하는 서사와 맞닿아 있다.
캐릭터 분포: 칸마다 다른 인간 군상
기차 내의 각 칸은 특정 계급만 아니라 특정 인간 유형을 보여주는 무대이기도 하다. 가장 하층민이 밀집한 꼬리칸에서는 ‘커티스’, ‘길리엄’ 같은 리더형 인물과 생존 본능에 충실한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이들은 억눌림과 고통을 통해 인간 본성의 극한을 드러내며, 사회 변화의 동력을 품고 있다.
중간 칸으로 갈수록 ‘교사’, ‘클럽 남녀’, ‘요리사’ 등 권력에 순응하거나 무관심한 인물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시스템 내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변화에 무감각하다. 영화는 이들을 통해 "중산층 혹은 체제 내 안락을 누리는 이들의 무관심"을 비판한다.
전방 칸으로 갈수록 ‘메이슨’이나 ‘윌포드’처럼 권력을 직접 행사하거나 상징하는 인물들이 나타난다. 메이슨은 위선과 선전으로 질서를 유지하는 인물이며, 윌포드는 시스템 자체를 설계하고 유지하는 신적 존재로 묘사된다. 그는 기차를 유지하기 위해 '균형'이라는 명목 하에 일부 인명을 희생하는 냉혹한 선택을 한다.
이처럼 캐릭터의 분포는 단순한 스토리 전개를 위한 배치가 아니라, 실제 사회를 투영한 인간 군상의 축소판이다. 각 인물은 단순한 개인이 아니라, 사회 속 역할과 계급의 상징으로 기능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스스로의 위치와 태도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결론
설국열차는 단순히 재난 상황을 배경으로 한 SF 영화가 아니다. 기차라는 닫힌 공간 안에 사회 구조, 시간 개념, 인간 심리를 모두 담아낸 은유적 거대한 상징체계다. 기차의 구조는 계급 사회를, 시간은 통제된 질서를, 캐릭터 분포는 인간의 다양한 군상을 대변한다. 이 영화를 다시 보는 것은 우리 사회를 다시 읽는 것이며, 관객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도전이다. 지금, 당신은 어떤 칸에 살고 있는가?